여헌 장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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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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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역학(易學) 이론과 특징적인 경위설(經緯說) 제시
조선 유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학문적 성취 이루어

여헌 선생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을 이어 17세기 조선 유학을 선도한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그의 방대하고 치밀한 역학 체계와 경위설에 입각한 이기론과 심성설 등은
유학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한 설계도이자 당대의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여헌이 사망한 후인 인조 26년(1648)에 임금 인조가 여헌에게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내린 「시호교지(諡號敎旨)」이다.

인간과 자연, 우주를 아우르는 방대한 학문체계 정립

특히 여헌 선생은 인륜도덕의 실천을 지향하여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아우르는 방대한 학문 체계를 정립함으로써 조선 유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특히 그의 학문 체계는 주자학의 수용 이후 편집 단계에 머물렀던 이전과는 달리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한 독보적인 것이었다.

민생에 기초한 정치개혁안 제시한 실천적 지식인

여헌 선생은 평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고자 하였고 정치에 깊은 뜻을 두지 않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시대적 혼란 속에서 곤궁한 민생을 살피며 백성을 위한 정치개혁을 촉구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영남을 대표하는 산림학자로서 그는 인조반정 이후 혼란을 수습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이상적인 정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현실정책의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논의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학문으로 평가

여헌의 학문과 사상은 유학 전통에 대한 단순한 계승이나 편집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데에서 그의 사상적 위상이 드러난다. 그는 퇴계와 율곡의 논의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이 투영된 이론 체계를 구체화하였다. 특히 한국유학사상 중 역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의 「역학도설(易學圖說」 은 당대 최고 수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경위(經緯), 분합(分合) 등의 다른 유학자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그의 독특한 논리 구조는 퇴계나 율곡은 물론 당대 유학자의 논리 구조를 뛰어넘는 학문적 성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