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 장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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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성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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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일기

임진왜란 당시 7년간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생생한 피란록
성리학적 인간관에 입각한 혼란한 시대 현실에 관한 근원적 성찰 담겨

편찬 및 간행

『용사일기(龍蛇日記)』는 임진왜란 당시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여헌 선생의 피난록이다. 임진년 4월부터 무술년 겨울까지의 7년간의 피난 기록으로 『피란록(避亂錄)』과 『피란후록(避亂後錄)』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사일기』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임진년과 다음 해인 계사년의 지지(地支)인 진사(辰巳)의 상징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학술적인 저술이 아니라 하여 처음 여헌의 문집을 간행할 때 포함되지 못하고 집안에서 필사되어 전래되다가 1962년 10월에 후손들에 의해 독립된 책으로 간행되었다. 이때의 책제목은 『선조문강공피난록(先祖文康公避亂錄)』이었다. 그러다가 1982년 『여헌선생전서(旅軒先生全書)』가 간행될 때 『성리설(性理說)』, 「역학도설(易學圖說)」과 함께 『용사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여헌 선생의 <피난록>. 1982년 󰡔여헌선생전서(旅軒先生全書)󰡕가 간행될 때 󰡔용사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구성과 내용

「피란록」에는 서문이 별도로 있고 말미에 발문 성격의 글도 있어서 완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피란후록』은 느닷없이 끝낸 것처럼 보인다. 두 글은 각각 『여헌선생전서』에 『용사일기』의 권1과 권2로 수록되어 있다. 『용사일기』의 앞부분에 실린 「서」는 『용사일기』 전체에 대한 서문이 아니라 『피란록』을 지은 뒤에 쓴 것이다. 「피란록」은 여헌 개인이나 여헌 일가의 일뿐만이 아니라 왜적의 형세, 조정의 형편, 의병의 활약, 명군(明軍)의 동정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거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 개인의 피란 체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진(柳袗)의 『임진록』, 도세순(都世純)의 『용사일기』와 공통되지만 개인 서사의 측면에 중점을 둔 두 작품과 비교하여 여헌의 『용사일기』는 의론성이 강화된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여기에서 여헌은 피란 생활에서 겪게 되는 개인의 일상을 매개로 하여 개인의 출처(出處) 문제, 의병의 동향과 전망, 축성(築城)의 이해득실, 인륜 도덕의 회복, 전란의 원인과 책임 등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선명하게 펼쳐내고 있다. 아울러 여헌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백성들의 현실로 시선을 확장하여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였으며, 지배층의 부도덕과 무능을 신랄하게 풍자, 비판하였다. 이 같은 사회비평적 성격과 함께 『용사일기』는 성리학적 인간관과 심성관에 입각하여 혼란한 시대 현실에 관한 근원적 성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한편으로는 백성의 현실에 시선을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륜 도덕의 확립을 전망하는 방향에서 『용사일기』는 의론성을 대폭 강화하는 글쓰기 방식을 택하였다. 이 점이 여타 임란 소재 일기와 차별화되는 『용사일기』의 특징적인 면모이다.